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加耶國
1. 槪說
[가야(가라)는 어떤 나라인가? 가야는 왜 신라나 백제처럼 강대국으로 되지 못하고 멸망할 때까지 여러 개의 나라로 나누어져 강대국의 세력권에 들어가 있었는가?]
가야(加耶) 또는 가라(加羅)는 가(邊) 쪽에 있는 땅(耶.羅)이라는 뜻이다.
경상도 지방에는 원래 선주민(先住民)인 한(韓)이 살고 있었는데, 환단고기(桓檀古記) 북부여기(北夫餘紀)에 의하면 B.C 194년에 기자조선(箕子朝鮮)의 마지막 왕 기준(箕準)이 위만(衛滿)에게 나라를 빼앗기고 무리들과 같이 한지(韓地)로 이동하였다. 이때 한지로 이동한 무리 중 일부는 경상도 지방으로 이주하여 선주민 한(韓)을 누르고 20여개의 소국(小國)을 세웠다.
이 무리들은 자신들의 조상(祖上)이 하늘나라 임금의 아들 환웅(桓雄)과 같이 하늘나라에서 지상세계로 내려왔다고 칭하였고, 자신들이 사는 곳을 하늘나라에서 내려온 무리가 사는 땅(耶.羅)이라는 뜻으로 구야(九邪) 또는 구주(九州)라 부르거나 이주경로로 볼 때 가장 가(邊) 쪽에 있는 땅(耶.羅)이라는 뜻으로 가라(加耶)또는 가라(加羅)라 부르거나 변한(弁韓). 변한(卞韓) 등으로 적었다.[註 삼국지에는 구야(九邪)가 같은 발음의 다른 한자인 구야(狗邪) 또는 구야(拘邪)로 적혀 있다. 이때의 "邪"는 야(耶)와 발음이 같다.]
B.C 194년에 경상도 지방으로 이주한 무리 중 일부는 다시 대마도(對馬島), 구주(九州) 등지로 이주하여 수십개의 소국(小國)을 세우고 자제(子弟)의 나라가 되어 경상도 지방의 근국(根國)을 부형(父兄)의 나라로 섬겼다. 이들은 대마도나 구주도 가 쪽에 있는 땅이라는 뜻으로 역시 가야(加耶) 또는 가라(加羅)라 불렀다.
삼국사기 신라본기에 의하면 B.C 57년에 진한(辰韓) 지역으로 이주(移住)해 온 박혁거세(朴赫居世) 무리는 선주민(先住民)을 누르고 사로(斯盧) 일명 진한(辰韓)을 세웠고, 삼국유사(三國遺事) 가락국기(駕洛國記)에 의하면 A.D 42년에 변한(弁韓) 지역으로 이주해 온 김수로(金首路) 등 무리들은 선주민을 누르고 6가야를 세웠다.
그 후 A.D 97-103년경에 구주(九州)의 가야계(加耶系) 소국(小國)들이 중심이 되어 야마대연맹(邪馬臺聯盟)을 세운 후부터 대마도, 구주에 있는 가야계(加耶系) 소국들은 종전까지 부형(父兄)의 나라로 섬기던 경상도 지방의 가야국 세력권에서 떨어져 나갔다.
그 후 A.D 204년 10월에 장춘(長春) 방면의 부여왕(夫餘王( 위구태(尉仇台)가 공손강(公孫康)이 황해도 방면에 설치한 대방군(帶方郡)으로 이동하여 구태백제(仇台百濟)를 세우고 A.D 205년에 그곳을 거점으로 하여 온조백제(溫祚百濟)와 마한(馬韓)을 정복하고 이어서 A.D 205-208년경에 야마대연맹(邪馬臺聯盟)을 복속시키고 A.D 208년경에 경상도 지방의 가야국(아라가야 제외)을 평정하였다.
그 후 A.D 396년에 고구려가 백제를 토벌(討伐)하자 경상도 지방의 가야국은 고구려의 세력권으로 들어 갔으나, 고구려의 세력이 약해지자 다시 백제의 세력권으로 들어갔다.
그 후 A.D 501년에 일어난 백제왕실(百濟王室)의 내분(內紛)으로 A.D 502-503년에 백제가 중국동해안분국과 요서분국을 상실하여 백제의 국력이 약해지자 신라는 그 틈을 타서 가야지방으로 진출하여 가야 소국들을 병합하였고, A.D 514년에 아라가야(阿羅加耶)를, A.D 532년에 금관가야(金官加耶)를, A.D 562년에 고령가야(高靈加耶)를 각 신라에 병합하므로서 가야국은 모두 신라에 병합되었다.
참고 : ※사서에 나오는 가야 한자 명칭